동 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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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 쥐앙은 17세기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전설로, 여성 편력 기질을 가진 남자를 상징한다.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거쳐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몰리에르는 이 전설을 바탕으로 희곡 《동 쥐앙》을 썼으며, 이 작품은 종교적 위선과 사회적 타락을 비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종교계의 반발로 상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동 쥐앙 이야기는 연극, 오페라,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소개되어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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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쥐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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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 |
제목 | 동 쥐앙 |
원제 | Dom Juan ou le Festin de pierre (동 쥐앙 우 르 페스탱 드 피에르) |
장르 | 비극 희극 |
원작 | 세비야의 바람둥이와 석상 손님 (1630) |
작가 | 몰리에르 |
제작 정보 | |
초연 | 1665년 2월 15일 |
초연 장소 | 팔레 루아얄 극장 (생토노레 가) |
배경 | 시칠리아 |
원어 | 프랑스어 |
등장인물 | |
주요 인물 | 동 쥐앙 스가나렐 돈나 엘비르 구스만 동 카를로스 |
2. 동 쥐앙 전설의 기원과 발전
동 쥐앙은 '플레이보이', '호색한'처럼 여성 편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문학과 예술에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굳어졌다. 연극 주인공으로 탄생한 동 쥐앙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연극뿐만 아니라 오페라,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되며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초연 이후 종교계의 반발로 공연이 금지되면서 극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 속 돈 후안 캐릭터를 바탕으로 〈동 쥐앙〉을 기획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무대에는 동 쥐앙에게 희생당한 석상이 등장하고 움직이는 기계장치가 사용되었으며, 사후 세계를 연출하는 특수 효과도 동원되었다.
18세기에 동 쥐앙은 연극을 넘어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었다. 특히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돈 조반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동 쥐앙은 소설과 시 등에서도 다양하게 재해석되어 '동 쥐앙 신화'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호프만의 〈동 쥐앙〉, 푸시킨의 〈석상의 손님〉, 레나우의 〈동 쥐앙〉, 보들레르의 시 〈지옥의 동 쥐앙〉, 메리메의 산문 《연옥(煉獄)의 영혼들》, 바르베 도르비이의 산문 《동 쥐앙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1. 스페인 연극에서의 탄생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은 동 쥐앙 전설의 시초로 여겨진다.[10] 이 희곡은 티르소 데 몰리나가 수도승이었던 탓에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으며, 돈 후안은 여색을 밝히는 한심한 남자로만 그려졌다.이 전설이 이탈리아로 전해진 경로는 불분명하지만,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에서 전설은 풍성하게 각색되어 희극적 요소가 늘어나고 종교적 색채는 옅어졌다. 1650년경 치코니니 등은 이 소재로 희극을 만들었다. 17세기 중반, 이탈리아 희극 극단은 즉흥극 형태로 프랑스에까지 전설을 퍼뜨렸고, 큰 성공을 거두면서 프랑스어판 "돈 후안"이 여럿 탄생하게 되었다.[11][12]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이 전설을 다룬 작가는 루이 14세의 공주 소유 극단 소속 드리몽으로, 1659년 리옹에서 출판했다. 이는 자유로운 번역에 가까운 번안이었다. 비슷한 시기, 파리 부르고뉴 극장의 배우 드 빌리에는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을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두 작품 모두 성공을 거두었지만 내용은 거의 같았다. 드 빌리에는 출판 서문에서 "이탈리아 극단의 돈 조반니가 호평받는 것을 들은 극단 동료의 권유로 이탈리아 작품을 프랑스어로 옮겼다"라고 밝혀, 두 작품이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음을 시사했다. 이탈리아인의 작품 중에는 치코니니의 작품만이 이 전설을 다루고 있어, 다른 작품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1652년 나폴리에서 출판된 기록이 있는 질리베르토의 작품이 원작일 가능성이 있지만, 확증은 없다.[13]
이 두 작품은 몰리에르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점 외에는 문학적 가치가 낮다. "돈 후안"의 성공 요인은 기사 조각상이 말을 하거나 주인공이 벼락을 맞는 등의 무대 장치가 당시 파리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14]
2. 2. 이탈리아와 프랑스로의 전파
티르소 데 몰리나가 희곡으로 만든 동 쥐앙 전설은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희극적 요소가 더해지고 종교적 색채는 옅어졌으며, 1650년경 치코니니 등이 이 소재로 희극을 만들었다.[11][12] 17세기 중반, 이탈리아 희극 극단이 즉흥극 형태로 프랑스에 전파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프랑스어판 "돈 후안"이 여럿 탄생했다.[11][12]1659년 리옹에서 루이 14세의 공주 소속 극단 작가 드리몽이 처음으로 프랑스어 번역본을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는 자유로운 번역에 가까웠다. 비슷한 시기, 파리 부르고뉴 극장의 배우 드 빌리에도 번역본을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이탈리아 극단의 영향을 받았으며, 치코니니의 작품 외에 소실된 다른 작품을 바탕으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13]
이 두 작품은 몰리에르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점 외에는 문학적 가치가 크지 않다. "돈 후안"의 성공은 무대 기교 덕분이었다.[14]
2. 3. 다양한 예술 장르로의 확장
동 쥐앙은 연극 주인공으로 탄생하여 발원지인 스페인을 넘어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공간적 확장뿐만 아니라 연극을 넘어 오페라,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되며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10]18세기에는 동 쥐앙이 연극 외 다른 장르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기 시작했다. 특히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돈 조반니》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성공 이후 동 쥐앙 이야기는 소설과 시 장르에서도 다양하게 재해석되어 '동 쥐앙 신화'라는 표현까지 만들어졌다. 호프만의 〈동 쥐앙〉, 푸시킨의 〈석상의 손님〉, 레나우의 〈동 쥐앙〉, 보들레르의 시 〈지옥의 동 쥐앙〉, 메리메의 산문 《연옥(煉獄)의 영혼들》, 바르베 도르비이의 산문 《동 쥐앙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등이 그 예이다.
3. 몰리에르의 희곡 《동 쥐앙》
몰리에르의 《동 쥐앙》(1665)은 동 쥐앙 전설을 프랑스 고전 희극으로 정립한 작품이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초연 이후 종교계의 반발로 재정 위기를 겪자, 극단 정상화를 위해 〈동 쥐앙〉을 기획했다. 이 작품은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 속 돈 후안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다.
몰리에르는 이 작품으로 큰 수입을 거둬 극단 재정 악화를 만회했다. 무대에는 움직이는 석상, 사후 세계 연출을 위한 특수 효과 등 화려한 장치가 동원되었다.
18세기에는 동 쥐앙이 연극 외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었다. 특히 로렌초 다 폰테 대본, 모차르트 작곡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크게 성공했다. 이후 동 쥐앙은 소설, 시 등에서도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동 쥐앙 신화'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호프만의 〈동 쥐앙〉, 푸시킨의 〈석상의 손님〉, 레나우의 〈동 쥐앙〉, 보들레르의 시 〈지옥의 동 쥐앙〉 등이 그 예이다.
''돈 주앙 또는 석상의 연회''(1665)는 여성 유혹자이자 무신론자인 돈 쥐앙의 마지막 이틀을 다룬다. 그는 하인 스가나렐과 동행하며, 간통, 여성 유혹, 종교적 비순응, 불효, 종교적 위선 등 다면적인 모습을 보인다.[4]
몰리에르는 이 작품을 쓸 당시 아내와의 불화, 건강 악화, 타르튀프 상영 금지 등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다.[16] 그럼에도 〈동 쥐앙〉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기독교 신자들의 반발로 15번의 공연 후 상연이 중단되었다.[19]
이후 얀센주의자들의 공격이 이어졌으나, 루이 14세의 중재로 수습되었다.[20] 몰리에르는 가정 불화와 장 라신의 배신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인간 혐오자〉 집필을 이어갔다.[21], [22]
본 작품은 몰리에르 사후 몇 년 뒤 미망인 아르망드 베자르의 청으로 상연이 허가되었으나, 코르네유가 수정한 버전이었다. 원작 그대로의 상연은 19세기 중반에야 이루어졌다.[23]
3. 1. 줄거리
Dom Juan ou le Festin de pierre프랑스어는 몰리에르가 1665년에 발표한 5막 희곡으로,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젊고 자유분방한 귀족이자 여성 유혹자이며 무신론자인 돈 쥐앙의 마지막 이틀간의 이야기를 다룬다.이야기는 돈 쥐앙과 그의 하인 스가나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가나렐은 거칠고 미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의 주인과 지적인 논쟁을 벌인다. 돈 쥐앙은 간통, 여성 유혹, 종교적 비순응주의, 낭비벽, 불효, 종교적 위선 등 다면적인 모습을 보인다.[4]
극은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돈 쥐앙의 방탕한 행적과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준다. 돈 쥐앙은 돈나 엘비라와의 결혼을 저버리고, 시골 처녀 샤를로트와 마튀린을 동시에 유혹하며, 자신이 죽인 사령관의 석상에 저녁 식사를 초대하는 등 파격적인 행동을 한다.
돈 쥐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위선을 칭찬하며 자신의 방탕함을 정당화한다. 결국 그는 베일에 가려진 여인의 유령과 사령관의 석상으로부터 경고를 받지만, 끝내 회개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3. 1. 1. 제1막
코담배에 대한 몇 마디 감사를 표한 후, 스가나렐은 돈나 엘비라의 시종인 구스만과 대화를 나눈다. 돈나 엘비라의 주된 관심사는 그녀의 새로운 남편인 동 쥐앙의 갑작스러운 출국이었다. 구스만에게 스가나렐은 자신의 주인인 동 쥐앙이 변덕스럽고 냉소적인 불신자이며 여성들이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묘사한다. 구스만이 나가고 동 쥐앙이 들어와 스가나렐과 결혼과 덧없는 애정에 대해 논쟁을 벌인 후, 그가 사랑에 빠졌고 새로운 사람, 즉 젊고 소박한 신부가 될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음을 밝힌다. 그 후 돈나 엘비라가 나타나 동 쥐앙에게 갑작스러운 출국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하며, 그의 대답은 그녀를 분노하게 한다.[1]동 쥐앙은 스가나렐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스페인의 젊은 귀족이다. 그는 아내인 돈느 엘비르에게 질렸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려는 것이다. 스가나렐은 그를 나무라지만, 돈 쥐앙에게 처음 만난 여자와 계속 함께하는 것은 속박일 뿐이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엘비르가 그를 쫓아왔지만, 돈 쥐앙은 그녀의 탄식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동 쥐앙은 스가나렐조차 질릴 정도의 방탕아였다.[2]
3. 1. 2. 제2막
돈 쥐앙은 시골 처녀 샤를로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을 약속한다. 돈 쥐앙이 샤를로트에게 계속해서 구애를 하자, 피에로가 나타나 이를 방해한다. 그 순간, 돈 쥐앙과 이미 결혼을 약속한 또 다른 여인 마튀린이 나타나 해명을 요구한다. 돈 쥐앙은 교묘하게 상황을 빠져나가 두 여자 모두 자신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1] 이때, 한 남자가 나타나 돈 쥐앙이 위험에 처했으며, 열두 명의 기마병이 그를 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돈 쥐앙은 스카나렐에게 옷을 바꿔 입자고 제안하지만, 스카나렐은 거절하고, 두 사람은 서둘러 도망친다.[1]스카나렐은 돈 쥐앙이 없는 동안 샤를로트와 마튀린을 설득하려 하지만, 그 사이 열두 명의 기사가 돈 쥐앙을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2]
3. 1. 3. 제3막
숲 속. 시골 복장을 한 돈 쥐앙과 의사 복장을 한 스가나렐이 등장한다. 그들은 길을 잃고 넝마를 걸친 거지와 마주쳐 숲길을 묻는다. 거지가 독실하고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된 돈 쥐앙은 그에게 신성모독을 하라고 금화를 주며 시험하지만, 거지는 거절한다. 그때 돈 쥐앙은 세 명의 강도에게 공격당하는 신사를 발견하고 칼을 빼들어 그를 구하러 간다. 신사는 돈 엘비라의 형제인 돈 카를로스였고, 그는 돈 쥐앙에게 그와 그의 형제인 돈 알론소가 여동생을 유혹한 죄로 돈 쥐앙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돈 쥐앙은 모르는 척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돈 쥐앙을 알지만 친구가 아닌 지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돈 알론소가 도착하여 돈 쥐앙을 알아보고 즉각적인 복수를 요구한다. 강도에게서 자신을 구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돈 카를로스는 형제인 돈 알론소를 설득하여 복수를 미룬다. 형제들은 퇴장한다.숲길을 계속 가던 돈 쥐앙과 스가나렐은 돈 쥐앙에게 최근 살해당한 사령관의 무덤에 이른다. 그는 스가나렐에게 사령관의 석상에게 저녁 식사에 초대하라고 명령한다. 석상은 머리를 끄덕인다.[9]
동 쥐앙은 시골뜨기로, 스가나렐은 의사로 변장하여 막이 오른다. 의술을 믿는가에 대한 문제로 동 쥐앙은 스가나렐을 말로 이기지만, 논쟁이 격렬해져 길을 잃고 만다. 그러다 숲의 가난한 자에게 말을 걸어 마을로 가는 길을 묻는데, 그 보답으로 구제를 요청받는다. 이 가난한 자는 신앙심이 깊어 매일같이 신에게 기도하지만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동 쥐앙은 "신을 저주해라, 그러면 루이 금화 한 닢을 주겠다"라고 말한다.[9] 결국 금화를 준 동 쥐앙은, 이번에는 세 명의 강도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귀족을 발견하고 돕기 위해 뛰어든다. 무사히 구출에 성공하지만, 그 남자는 엘비르의 오빠인 돈 카를로스였고, 바로 동 쥐앙을 쫓아온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입장을 "동 쥐앙의 친구"라고 속이고, "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직후 돈 카를로스의 동생 돈 알론스가 나타나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돈 카를로스는 기사로서 생명을 구원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그 보답으로 복수를 하려는 동생을 달래며 돈 쥐앙에게 돈 누 엘비르와의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고 떠난다. 공포에 숨어 있던 스가나렐을 동 쥐앙이 꾸짖고 있을 때, 훌륭한 건물이 눈에 띈다. 이 건물은 예전에 동 쥐앙이 결투로 죽인 기사의 묘였다. 대리석으로 된 그 기사의 조각상을 보고 스가나렐이 무서워하자, 장난으로 만찬에 초대했는데, 놀랍게도 조각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3. 1. 4. 제4막
동 쥐앙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먼저 채권자 맹스 르 디망슈(Monsieur Dimanche)가 찾아온다. 동 쥐앙은 그에게 아첨하며 달랜 후, 갑자기 방에서 나가 버리는 것으로 디망슈를 무시한다.[4] 스가나렐(Sganarelle)이 들어와 디망슈를 아파트 밖으로 내보낸다. 동 쥐앙의 아버지 동 루이(Dom Louis)가 도착한다. 그는 동 쥐앙을 꾸짖고 경멸하며 화를 내며 떠난다. 돈나 엘비라(Donna Elvira)가 등장한다. 그녀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남편에게 천벌을 경고하는 사랑스럽고 아내다운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동 쥐앙에게 죄를 뉘우치라고 설득하려 하지만, 헛된 시도에 그친다. 그녀는 그를 혼자 남겨둔 채 떠난다. 마침내 동 쥐앙과 스가나렐은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데, 사령관의 조각상이 나타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식사하지는 않지만, 다음 날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동 쥐앙을 초대한다.[4]
동 쥐앙의 방에서 막이 시작된다. 조각상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단순한 착각이라고 여기는 동 쥐앙. 그곳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디망슈가 나타나고, 엄격한 아버지 동 루이는 아들의 방탕한 행실을 꾸짖으러 온다. 수녀가 될 각오도 하고 돈 쥐앙을 위해 진심으로 몸가짐을 고치도록 엘비라도 권하러 왔지만, 돈 쥐앙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그저 흘려들을 뿐이다. 겨우 만찬을 시작하려는데, 자꾸 문을 두드리는 자가 있다. 문을 두드리던 것은 기사의 조각상으로, 만찬에 초대받은 답례로 돈 쥐앙을 만찬에 초대하러 온 것이다. 그것을 승낙하고 제4막이 종료된다.[5]
3. 1. 5. 제5막
시 외곽 시골에서 동 쥐앙은 아버지에게 천국이 자신을 변화시켰고 사악한 방식을 버렸다고 말한다. 아들의 소식을 듣고 기뻐한 동 루이는 떠난다. 회개와 개혁의 소식은 스가나렐에게도 기쁨을 주지만, 동 쥐앙은 즉시 그 모든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격정적으로 위선을 칭찬하며 길게 말한다. 그러자 동 카를로스가 나타나고, 결투는 불가피해 보인다.[5]베일에 가려진 여인의 유령이 나타나 동 쥐앙에게 죄를 뉘우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동 쥐앙은 유령에게 칼을 뽑아 휘두르며 뉘우치기를 거부한다. 지휘관의 조각상이 들어와 동 쥐앙에게 손을 내밀라고 한다. 동 쥐앙이 그렇게 하자 지휘관은 "죄의 삯은 죽음이다"라고 외친다. 그 순간, 동 쥐앙은 불타고 있다고, 불타고 있다고 소리친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번쩍이며, 땅이 갈라져 동 쥐앙을 삼키고, 그의 추락은 화염에 휩싸인다. 주인이 사라진 것을 본 외로운 하인 스가나렐은 그의 임금을 잃은 것을 슬퍼한다.[5][6]
동 카를로스는 여동생 엘비라와 함께 살 것을 요구하러 오지만, 동 쥐앙은 "엘비라는 세상을 버릴 각오를 했고, 신께 여쭈어본 결과, '엘비라의 일은 신경 쓰지 마라, 함께 살면 너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하며, 동 카를로스의 분노를 산다. 게다가 결투 약속까지 하게 된다. 이전보다 성질이 나빠진 주인의 모습에 기가 막힌 스가나렐이었지만, 그곳에 망령이 나타났다. 망령은 참회를 권하지만, 이를 무시하는 동 쥐앙. 그곳에 기사의 석상이 나타나 손을 잡는 순간, 동 쥐앙의 몸 위에 번개가 떨어지고, 큰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동 쥐앙이 죽자 모두가 만족했지만, 오랫동안 섬겨온 스가나렐만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내 월급! 내 월급!"이라고 스가나렐이 연호하는 가운데, 막이 내려진다.[5][6]
3. 2. 등장인물
등장인물[7] | 초연 배우 (1665년 2월 15일)[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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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쥐앙 | 라 그랑주 |
스가나렐 | 몰리에르 |
도나 엘비라 | 마드모아젤 뒤 파르크 |
구스만 | |
돈 카를로스 | |
돈 알론조 | |
돈 루이 | 루이 베자르 |
샤를로트 | 마드모아젤 드 브리 |
마튀린 | 마드모아젤 몰리에르 |
피에로 | 앙드레 위베르 |
거지 | 아마도 라 토릴리에르? |
사령관의 조각상 | 아마도 라 토릴리에르? |
비올레트 | |
라고탱 | |
몽시외 디망슈 | 뒤 크루아지 (필리베르 가소) |
라 라메 | 드 브리 (에드메 빌르캥) |
유령 (베일 여자 모습) | 아마도 마들렌 베자르? |
- 돈 쥐앙: 돈 루이의 아들
- 스가나렐: 돈 쥐앙의 하인
- 라 비올레트: 돈 쥐앙의 하인
- 라고탕: 돈 쥐앙의 하인
- 돈느 엘비르: 돈 쥐앙의 아내
- 귈스망: 도나 엘비라의 하인
- 돈 카를로스: 도나 엘비라의 형제
- 돈 알론소: 도나 엘비라의 형제
- 돈 루이: 돈 쥐앙의 아버지
- 프란시스크: 빈자
- 샤를로트: 시골 처녀
- 마튀린: 시골 처녀
- 디망슈: 상인
- 피에로: 농민
- 라 라메: 검객
- 기사의 상
- 망령
3. 3. 특징
몰리에르는 동 쥐앙을 단순한 호색한이 아닌, 복합적인 근대적 인물로 묘사했다. 스페인 극에서 묘사되는 단순한 여성 편력가에서 이탈리아에서 정열적이고 쾌락 추구자로서의 면모가 부여된 후, 몰리에르에 의해 복잡한 성격을 부여받아 보편적인 유형으로까지 격상되었다.[27] 제2막까지 쾌락을 좇던 돈 쥐앙은 제3막에서는 무신론자로 등장하고, 제5막에서는 위선자로 등장한다. 가볍고 사악한 남자이면서도, 낯선 남자를 돕는 의협심도 있으며, 기사의 조각상을 태연히 만찬에 초대하는 배짱도 가지고 있다.[27]몰리에르가 묘사한 돈 쥐앙은 당시 사회에 대한 관찰의 산물이다. 프롱드의 난 등의 수습으로 절대 왕정의 기초가 굳어지면서, 귀족 세력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거의 상실했다. 막대한 부와 특권을 누리던 그들은 무위도식하는 유한 계급으로 변모했고, 그들 중에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그려졌던 "돈 쥐앙"적인 인물이 다수 배출되었다. 이들은 무신론자였지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고, 깊은 사색이나 철학적인 뒷받침이 없었기에, 독신적인 행위도 거리낌 없이 행했다. 그러한 그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기존의 방탕한 생활 태도를 버리고 기독교에 귀의하면, 극단적으로 열렬한 "광신자"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28]
몰리에르의 후원자였던 아르망 드 부르봉-콩티는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1657년에 갑자기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 변하여, 몰리에르는 후원을 잃었을 뿐 아니라 "죄 많은 오락"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29][30][31]
이 작품은 성공을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제작되었다.[24] 당시 관습으로는 5막에 달하는 대작은 알렉상드랭을 사용하거나, 삼일치의 법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등의 규칙이 있었지만, 몰리에르는 본작에서 그 모든 것을 짓밟았다. 또한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동시대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으며, 원래는 나무랄 행위가 아니었기에[25], 몰리에르도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나 어떤 장면을 동시대 극작가에게서 그대로 가져오기도 하는데, 본작에서는 그 차용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외에도,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뒤섞여 있는 등, 작품으로서의 형식적 완성도는 앞서 언급한 사정으로 인해 결코 높지 않다.[26]
4. 《동 쥐앙》과 종교와의 갈등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초연 이후 종교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초연 이후에도 종교계의 반발을 겪었는데, 루이 14세마저도 종교계의 압력에 굴복하여 〈타르튀프〉 공연을 금지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몰리에르는 극단 운영의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동 쥐앙〉을 기획했다.[32]
〈동 쥐앙〉은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에 묘사된 돈 후안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몰리에르는 이 작품을 통해 극단의 재정 악화를 만회하고자 했으며, 화려한 무대와 특수 효과를 동원하여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32]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 쥐앙〉은 종교계의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15번의 상연 만에 중단되었다. 몰리에르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다시 상연되거나 출판되지 못했으며, 1682년 몰리에르 전집에서도 삭제되는 가혹한 운명을 겪었다.[32] 이는 〈타르튀프〉가 상연 금지 5년 만에 재개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배우들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이단 취급을 받는 등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다. 모의 주교 보쉬에는 연극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비난하며, 신자들이 연극에 빠져 신앙심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 몰리에르 역시 〈상상병 환자〉 공연 중 사망하여 가톨릭 묘지에 묻히지 못할 뻔했으나, 아르망드 베자르가 루이 14세에게 청원하여 겨우 매장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연극계와 교회의 대립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35][36][37][38]
4. 1. 상연 금지 논란
몰리에르의 희곡 《타르튀프》 상연 금지 이후, 《동 쥐앙》 역시 종교적 위선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32]《동 쥐앙》은 그 주제의 발생 과정과도 관련되어 바로크 극의 색채가 강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희극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타르튀프》 상연 금지 조치를 받은 몰리에르가 격렬한 분노를 담아 종교적 위선을 폭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설치해 놓았다. 이미 성직자나 광신자들은 본 작품이 공개되기 전부터 분노로 들끓고 있었는데, 그런 짓을 하면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32]
4. 2. 로슈몽의 비판
17세기 프랑스에서 연극계와 가톨릭 교회의 관계는 매우 엄격했다. 이 당시 배우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았고, 천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멸시의 영향도 있어, 모의 주교 보쉬에는 연극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여 격렬하게 공격했다. 이는 결국 신자들이 연극의 매력에 빠져 신앙심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성직자들의 방어책이었다. 무대 위에서 신의 위대함이나 종교의 권위를 공격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33][34]5. 한국에서의 동 쥐앙
한국에서 동 쥐앙은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여성 편력, 권력 남용, 사회적 위선 등 다양한 주제와 결합하여 변주되어 왔다.
5. 1. 한국 연극/영화에서의 수용
한국에서는 2004년 캐나다에서 초연된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이 소개되었다. 2019년에는 이쿠타 히로카즈가 연출하고 우메다 예술 극장이 제작한 버전이 상연되었으며, 후지가야 타이스케가 주연을 맡았다.[63]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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宝塚雪組の望海風斗、ミュージカル「ドン・ジュアン」で稀代のプレイボーイに
https://natalie.mu/s[...]
宝塚歌劇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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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My-Ft2の藤ヶ谷太輔主演、ミュージカル『ドン・ジュアン』全キャストが発表 蓮佛美沙子、平間壮一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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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E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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